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조병준 지음 / 예담
나의 점수 : ★★★
싶어한다, 싶어한다, 싶어한다.
소망이 많을 때란 결국 삶이 시원찮을 때다.
바깥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서울에 돌아와 외국 친구들에게 편지를 할 때, 인사말처럼 등장하는 구절 하나.
“서울에서 살기는 참 힘들어.”
서울에서의 삶이 힘든 데는 물론 아주 많은 이유가 있다. 서울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러다 보니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삶에 여유가 없고······. 시간의 여유가 없는 삶, 서울의 삶. 분이 아니라 초를 나눠 또 나노초를 쪼개며 살아가는 삶, 서울의 삶.
그런데 잠깐만. 시간에 여유가 없는 게 우리 뿐일까?
우리만 그런 건 분명히 아닌데. 런던, 파리, 마드리드, 뮌헨, 브뤼셀의 삶도 힘들고 바쁘게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우리네 삶이 더 빠르게, 빡빡하게 굴러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서울의 삶이 런던이나 파리나 마드리드나 뮌헨이나 브뤼셀의 삶보다 몇 배 더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이 아니라면 문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시간이 아니라면 혹시 공간?
공간. 空間.
‘아무 것도 없이 비어있는 곳. 모든 방향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빈 곳.’
그렇다. 서울에는 공간이 없다. 공간에 여유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간 자체가 없다. 서울에는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울에 둥지를 튼 사람들은 실험실 유리 상자에 갇힌 쥐들처럼 살아가야 한다. 유럽의 도시들을 흘러다니며 그들의 삶이 부러웠던 이유는 결국 단순했다. 어느 도시에든 ‘빈 곳’이 있었다는 것.
집을 떠나지 않고는 나를 만날 수 없느냐고? 꼭 배낭을 짊어지고 낯선 곳에 가야만 나를 만날 수 있느냐고?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 세상을 안다는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운동화에 구멍이 나도록 떠돌아다녀야 비로소 나는 세상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거려야 겨우 내가 누구인지를 조금씩 알게 된다.
문밖에 나서지 않고 세상을 알고,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다. 심지어는 부처도 자기를 만나러 궁궐을 떠났고, 예수도 자기를 만나러 광야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을 만들고, 내가 하는 일이 내 근육과 신경회로를 길들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내 정신을 채운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매일 먹는 음식과 매일 하는 일과 매일 만나는 사람은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기는 하지만, 지금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서는 코딱지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지금의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상은 아름답고 편안한 것이지만, 동시에 무덤이기도 하다.
일상은 나에게 속삭인다.
괜히 낯선 음식 먹고 배탈이라도 나면 무슨 고생이야? 괜히 엉뚱한 짓거리하다가 반신불수라도 되면 어쩌려고? 까딱하다 못된 인간 만나서 신세 망치면 끝장이라구.
또 다른 너를 만나고 싶다고? 그래봐야 정신분열증이야. 너는 지금 있는 너 하나면 족한거야. 도대체 또 다른 너를 만나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니? 지금 이대로가 좋아.
그렇게 속삭이면서 일상은 내가 만날 가능성이 있는 나를 흙으로 덮는다.
그래서 일상은 무덤이 된다.
떠나시라. 여유가 되면 비행기표를 사고, 돈이 모자라면 기차표를 사고, 주머니가 비어 있으면 그냥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버스의 종점까지라도 가보시라. 낯선 곳에 가면 낯선 내가 나에게 인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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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기도 한 저자의 감성적인 여행에세이.
(실제로 책 중간중간 자작시도 몇 편 실려있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끌리는 나이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달콤하기만 해 존경하게 되지는 않는 글.
하지만 ‘싶어한다’와 ‘공간’과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은 요즘 내가 자주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만족할만도 한데 뭘 더 바라는 걸까 난. 뭘 더 꿈꾸는 걸까 난. 생각해보면, 현재에 감사해야 할 일이 이렇게도 많은데.
불만스러워서라기 보다는 궁금해서.
내겐 새로운 장소가 중요하고
그 장소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나와 네가 중요하므로.
모두 정해진 길을 똑같이 가야하는 건 아니므로.
오히려 내겐 그게 이상하므로.